내가 별로인 운명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다.
그걸 깨닫기까지 나는 자신을 기만하면서 살아왔거나
착각 속에서 살아왔거나 아마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더군다나 내 나이 오십 전에는 나쁜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었다,
실제로 그걸 믿었기 때문에 믿은 만큼 진짜 열심히 살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부림치며 살아 봤지만,
이빨이 부러지도록 이를 악물고 살아봤지만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오십년을 훌쩍 넘겼으니
인생 오십이면 知天命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왜 나는 내가 그럴듯한 운명의 소유자일거라는
착각을 하며 살게 됐을까?
그 착각으로 인하여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아닌 누군가의 탓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본의 아니게 피해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생각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나의 착각 속에서 사실 나의 불운한 운명을 실현시켜줄 유다 같은
악역을 맡은 사람이 있었으니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내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의 인연을 끊으려야 끊을 수조차 없는 구조로
되어있을 것이 자명하거늘.........
나는 절대자처럼 군림하고 폭군처럼 횡포부리며
절대 선처럼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며 살았다.
지금 나는 발가벗겨진 나를 보고 있다.
가리어진 모든 것들을 치워버리고 진솔한 나를 보고 있다.
한 인간의 아픔을 느끼면서 나를 어루만진다.

아~나를 기만한 그가 밉다.
나의 인생을 제멋대로 설계한 그가 원망스럽다.

기만에 속아 미워한 그에게 미안하다.
되돌릴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후회를 지워 버리고 싶다.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당해야만했던 그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사랑할거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세월이 또 오십년쯤 지나고 나면
그 말 또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내 마음 바라보기 -정경식-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쉬어갈 공간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함께 즐길 행복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함께 꿈꿀 소망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편안해할 믿음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행복해할 사랑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휴식할 그늘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함께 즐길 기쁨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몸을 녹일 따뜻함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함께 어울릴 여유가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산책할 오솔길이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떠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내 마음엔 누군가 들어와 하소연할 포용력이 있는가?

아~ 없구나,~ 꽉차있구나!

따뜻함도 없고, 청량함도 없고, 여유도 여백도 없이 꽉차있구나!
다행히 저만치 청소차가 보인다.~ 빈틈없이 차있는 내 마음을 비워줄
‘세월’이라는 청소차가 보이는구나.~
이번엔 정말 깨끗이 치워보자!
치우고 청소하고 여백으로 남겨두자!
누군가 들어와 나무도 심고 오솔길도내고 불도지피겠지,
누군가 놀 수 있게...... 남은공간은 여백으로 두자!